기획자?
우리나라 인터넷 회사, 특히나 포탈 같은 웹서비스를 하는 회사에서 “기획자” 라는 타이틀은 거의 인터넷 서비스의 시작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요즘은 왠만한 서비스 하나에 기획자 한명씩은 다 붙어있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이 “기획자” 라는 타이틀은 굳이 비교하자면 “Product Manager” 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물론 인터넷 서비스에서 “Product” 라는, 좀 정말 상품 스러운 이름을 넣는 것이 정서상 안맞기는 하지만) 또 맡고 있는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Content Manager” 와 비슷하기도 하다.
전에, 한 포탈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약 100명 가까이 되는 기획이 모두 사라져도 전혀 상관없겠다고 좀 극단적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근거는 이렇다. (아래 쓰는 이야기는, 전체 기획자들이 모두 이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전체에 대한 오해로 받아들여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다수 포탈 서비스에서 기획자가 하는 일이란, 예를 들면 블로그 서비스네 영화 서비스네 등의 ‘기획자’의 역할이란, 다시 한번 극단 적으로 이야기 하면 ‘그림 그리기’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즉 기능적인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그것을 디자이너에게 넘기고 개발에게 넘기는 역할. 대다수가 해당 Project의 managing 까지 겸하는 경우는 많지만, 실제 project managing – 기술 개발 managing 에서 부터 QA 까지-를 담당한다기 보다 스케줄 관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거 언제 끝나나요? 언제 오픈 되나요?’)
또 이 분들 중에는, ‘기획’ 이란 것이 무슨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양, 그래서 소위 뒷치닥거리를 하는 ‘운영’ 이라는 것은 고귀한 ‘아이디어’ 내시는 분들이 하기에 너무 저급이라, 따로 ‘운영자’를 두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러면 새 서비스 하나 오픈 하고 나서 운영은 ‘운영자’ 시키고 나니 기획이 할일이 없어지고, 그래서 다시 서비스 UI 를 바꾸거나 기능을 더하거나 하는 일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디자이너/개발의 리소스는 다시 할일이 생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이 있어서 사람이 붙는 것이 아닌, 사람이 있으니 일이 만들어 지는)
물론 이렇게 새로운 기능을 만들고 UI를 고치는 것이 당연히 서비스를 좋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냉정히 보면, 포탈에 있는 메뉴 하나하나에 붙어있는 기획자들이 과연 해당 서비스의 총체적 발전 방향을 생각하고 주기적 변경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연례행사처럼 ‘고칠 때 되었으니 고쳐보자’ 거나 ‘OOO서비스 기획자인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네’ 하는 것인지는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컨텐츠 채널과 기능 서비스의 기획은 엄연히 달라야 함에도 실제 현장에서 하는 일은 별반 차이가 없다. 기능 서비스들은 Product Manger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며 컨텐츠 채널은 Content manager 역할이 필요한 것인데 둘다 “기획” 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전문성을 전혀 살리지 못한다.
기능서비스의 Product manager 는, 이용성, 속도, scalability, cross-platform 등등의 제반 기술적은 뒷단까지 모두 고민해야 하고, 거기에 Tech operation/QA 까지, 정말 S/W 개발에서 처럼 Product life cycle 을 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기획자” 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한 이유다.
컨텐츠 채널의 Content manager 는, contents sourcing, business development, 파트너와 함께 revenue generation까지 이끄는 Sales 에 대한 이해, 그리고 매일 매일의 contents를 편집하는 마치 잡지의 편집장 같은 역할까지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기획자-Planner” 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한 이유다.
내가 극단적으로 한 포탈의 기획자 150명 중 100명 없어도 장사 된다고 이야기 했던 이유는, 기능서비스의 Product Manager 는 개발이나 operation 하던 사람 중에서 경험을 쌓아 되는 경우가 적합하지 ‘기획’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컨텐츠 채널 manager는 ‘편집자-editorial’ 의 숙련된 사람이나 컨텐츠를 통한 마케팅 (user acquisition or user retention) 을 했던 사람의 career path 가 맞기 때문이다.
Product Manger 나 Content Manager 의 직급이 “manager” 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당 서비스/product 의 전체 구조를 보고 이끌어 가는 사람이려면 당연히 매니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기획자’ 를 직군으로 나누어서 마치 개발자나 디자이너 처럼 특정한 ‘직종’ 이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이 바로, 끊임없이 쓸데없는 ‘UI 개편작업’ 이 만들어 지는 이유다.
‘기획자’ 중에 Product Manager 나 Content Manager 역할을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시키고 직종으로서의 ‘기획자’ 라는 사람은 의미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해당 회사의 2/3 기획자는 없어도 상관 없다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것.
이 글을 읽으실 몇 안되는 독자중 혹시 본인이 ‘기획자’ 여서 기분이 나쁘다면 곰곰히 생각해 보시면 좋겠다.
내가 맡은 서비스가 Product manager 를 요구하는지 Content manager 를 요구하는지
내가 서비스의 manager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할 자신이 있는지, 할 능력이 있는지
막연히 ‘기획자’ 라는, 어디에도 뿌리가 없는 직종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해당서비스의 manager 로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를 위해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맞지 않을까.
2 comments so 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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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무지 무지 무지하게 동감합니다.
이거 아주 제대로 한방인걸..